모욕-치욕-굴욕-관계도
모욕, 치욕, 굴욕 관계도

모욕, 치욕, 굴욕? 비슷해 보이는 이 단어들.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모욕, 치욕, 굴욕의 순서로 감정의 세기가 깊어집니다. 모욕보다는 치욕이, 치욕보다는 굴욕이 가지는 의미가 더 많습니다.

모욕, 치욕, 굴욕의 차이를 나타낸 관계도
모욕, 치욕, 굴욕의 차이를 나타낸 관계도 Snug Archive - Snug Archive

『표준대국어사전』의 정의를 바탕으로 각 단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욕(侮辱)
깔보고 욕되게 함
치욕(恥辱)
수치와 모욕을 아울러 이르는 말
굴욕(屈辱)
남에게 굴복하여 업신여김을 받고 모멸감을 느낌

이들 단어는 모두 타인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긴다는 점이 공통적입니다. 각 단어는 어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모욕

모욕은 욕설이나 인신 공격과 같이 경멸의 의사나 감정을 표시해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를 떨어트리는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언행입니다.

모욕은 굴욕, 치욕과는 다릅니다. 모욕과 치욕, 굴욕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격 주체의 유무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느냐'입니다. '사회적 성원권', '환대' 등의 문제를 연구해온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은 저작『사람, 장소, 환대』에서 모욕과 치욕, 굴욕의 가장 큰 차이점이 '공격의 가해자가 분명한지 아닌지의 차이'라고 말합니다.

사회적 성원권(social membership)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권리로, 법적 지위와는 다르며 상호작용 의례 속에서 끊임없이 확인받는 성질의 권리

그녀에 따르면 모욕에는 언제나 가해자가 있습니다. 가해자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 대상에게 항의할 수 있습니다. 형법 제 311조에는 모욕죄(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 가해자를 신고하거나 처벌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힐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모욕에는 상호작용을 주고 받는 대상과 대상, 그리고 그 관계가 명확합니다. 하지만 치욕과 굴욕은 다릅니다.

치욕

치욕과 굴욕에는 반드시 가해자라고 지목할 수 있는 대상이 없습니다. 모욕을 당한 사람은 모욕을 가한 사람에게 대항할 수 있지만, 치욕이나 굴욕을 당한 사람은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연예인들의 굴욕 사진을 널리 퍼트리지만, 이런 행동이 사진의 대상을 모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굴욕을 재미로 즐기는 휴밀리테인먼트(humilitainment) 문화인 듯 보입니다.

책임이 따르지 않기 때문일까요? 모욕보다는 굴욕이 인기를 끕니다. 모욕죄는 성립되도 굴욕죄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녀는 굴욕을 당한 사람이 취하는 최선의 전략은 사건을 축소하고 쿨(cool)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쿨하지 않는 것에 쿨하지 않는 문화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욕은 모욕에 수치가 더해진 감정입니다. <감정 52가지 영어로 공부하기 시리즈>의 수치(shame) 영어로 표현하는 법 에서 심리학자들이 정의한 수치의 의미를 살펴본 것처럼, 이 감정은 위신, 체면 품위 등이 손상되어 자기 스스로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고통스러운 자의식입니다. 치욕은 모욕에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감정이 더해졌기 때문에 모욕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이릅니다. 그리고 여기에 모멸감을 더하면 굴욕이 됩니다.

굴욕

우리말 어감 사전』에 따르면 굴욕은 치욕에 모멸감을 더한 의미입니다. 모멸감은 모욕과 경멸의 의미가 합쳐진 단어로 상대방을 모욕하고 하찮게 여겼을 때 그 행동을 받는 대상이 결과적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이자 사회학자인 김찬호는『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에서 모멸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모멸은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p.161)

굴욕은 수치와 모욕에 모멸이 더해진 감정입니다. 여기서 굴욕의 '굴'은 '굽힐 굴(屈)입니다. 굴욕과 같은 말로는 좌욕(挫辱)이 있습니다. 여기서 '좌'는 꺾일 좌(挫)입니다. 남에게 낮추어 보이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 그래서 강제로 나의 존엄을 굴하고 꺾이는 것이야 말로 한 존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감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단어들을 공부하고 나니 우리 존재를 그저 우리 존재만으로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주는 이들이 떠오릅니다. 고맙고 귀한 존재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욕과 굴욕, 치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단어들의 차이가 좀 더 선명하게 느껴지나요? 마지막으로 각 단어를 사용한 예시로 이번 글을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용법 사례

각 용법의 사례는 『우리말 어감 사전』의 「수치와 치욕과 굴욕편」에 나와 있는 예제를 차용하였습니다.

  1. 수치
  • 그 배우는 레드 카펫 위에서 넘어졌을 때 수치를/치욕을/굴욕을 느꼈다.
  •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건 문화인의 수치예요/치욕이에요/굴욕이에요.
  • 넌 집안의 수치야/치욕이야/굴욕이야.
  1. 치욕/굴욕
  • 우리 팀은 상대에게 3전 3패의 치욕을/굴욕을/수치를 당했다.
  • 인조는 청나라 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치욕의/굴욕의/수치의 눈물을 흘렸다.
  • 삼전도의 굴욕/치욕/수치
  • 카노사(Canossa)의 굴욕/치욕/수치
  1. 굴욕
  • 1997년 한국은 금융 위기를 벗어나려고 IMF와 굴욕/치욕/수치 협상을 벌여야 했다.

참고 문헌

  • [1][네이버 국어사전] 굴욕, 모욕, 치욕(표준국어대사전, 1999.10.09., 국립국어원)
  • [2] 김찬호,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문학과지성사, 2014, 161.
  • [3]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 2015, 159-161.
  • [4] 안상순, 『우리말 어감 사전』, 유유. 2021, 「수치와 치욕과 굴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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